스태그플레이션: 경제가 안 좋은데 물가는 오르는 최악의 시나리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거나 흔히 알고 있는 경제 상식은 아주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경기가 좋아서 내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지면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반대로 경기가 나빠서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첫 장에 나오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자,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기본 원리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악몽 같은 상황이 존재합니다. 공장은 멈춰 서고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마트의 장바구니 물가는 미친 듯이 치솟는 상황입니다. 내 월급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잘릴 위기인데, 밥값과 교통비는 매일 오르는 공포.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입니다.
제가 10년 넘게 투자를 해오면서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단순히 주가가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하락장에서는 현금을 쥐고 있으면 나중에 싼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는 기업 실적이 나빠져서 주식은 폭락하는데, 내가 쥐고 있는 현금의 가치마저 물가 상승으로 인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도망칠 곳이 없는 외통수 같은 상황, 이것이 투자자들이 느끼는 진짜 공포입니다. 오늘은 경제학자들도 고개를 저을 만큼 해결하기 어렵다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정체와, 이런 난세에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제 경험과 분석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 1. 도대체 왜 이런 괴물이 생길까?
경기가 안 좋은데 물가가 오르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물건을 살 사람이 없는데, 즉 수요가 부족한데 가격이 오른다니요? 이 괴물을 만드는 주범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 쪽에 있습니다. 이를 경제 용어로 공급 충격(Supply Shock)이라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이 1970년대 오일 쇼크입니다. 당시 중동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석유 공급이 갑자기 끊기자 유가가 순식간에 4배나 폭등했습니다. 석유는 현대 산업의 혈액과도 같습니다. 석유가 없으니 공장은 기계를 돌리지 못해 문을 닫아야 했고, 기업은 생존을 위해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즉, 심각한 경기 침체와 실업 대란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 옷, 그리고 물류 운송비 등 세상 모든 물건의 원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폭등했습니다. 물건이 안 팔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만드는 비용 자체가 너무 비싸지니 가격표를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성장과 고물가가 동시에 닥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매커니즘입니다.
최근 우리가 겪었던 상황도 이와 매우 유사했습니다. 전쟁으로 가스관이 잠기거나, 전염병으로 글로벌 물류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 재료가 없어서 못 만드는 상황이 왔습니다. 물건이 귀해지니 가격은 오르고, 경제 활동은 멈춰버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입니다.
## 2. 중앙은행의 딜레마: 브레이크냐 엑셀이냐
스태그플레이션이 경제의 암이라 불리는 진짜 이유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6편에서 우리는 중앙은행이 금리라는 무기를 통해 경기를 조절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이 전지전능한 금리 정책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제가 한국은행 총재라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겠습니다. 지금 상황은 경기도 죽어가고 있는데 물가도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우선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서 돈줄을 죄면(긴축) 어떻게 될까요? 시중에 돈이 마르니 물가는 좀 잡힐지 모릅니다. 하지만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한 수많은 기업이 줄도산하고, 대출받은 서민들은 파산하게 됩니다. 이미 죽어가던 경기에 찬물을 끼얹어 확인 사살을 하는 격이 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죽어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면(부양) 어떻게 될까요? 기업들의 숨통은 좀 트일 수 있겠지만, 이미 불타오르던 물가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 됩니다. 자칫하면 화폐 가치가 완전히 붕괴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찾아와 국가 경제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즉, 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전복되고, 엑셀을 밟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진퇴양난의 상태. 이것이 정책 입안자들이 스태그플레이션 앞에서 밤잠을 설치는 이유입니다.
## 3. 역사는 답을 알고 있다: 폴 볼커의 결단
그렇다면 과거 인류는 이 지옥 같은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전설적인 연준 의장 폴 볼커의 사례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하고도 고통스러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10년 넘게 지속된 지독한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등판한 폴 볼커는 악마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기준 금리를 무려 20%까지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물가라는 불부터 끄겠다는 확실한 우선순위를 정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수많은 좀비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10%를 넘었습니다. 성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연준 건물을 에워싸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뼈를 깎는 고통 끝에 결국 물가는 잡혔고, 물가가 안정되자 기업들은 다시 미래를 위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 경제는 다시 건전한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과 경기 침체를 정면으로 돌파해야만 끝난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차가운 교훈입니다.
## 4. 내 자산을 지키는 생존 전략
이런 난세에 우리 같은 개인 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식 투자는 정말 어렵습니다. 기업의 이익(매출)은 줄어드는데 원자재 비용은 늘어나니 이익률이 박살 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전에서 활용하는 방어적인 투자 전략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원자재 관련 자산에 주목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이 주로 공급 부족에 있으므로, 공급이 부족한 자산인 석유, 천연가스, 농산물 같은 원자재 가격은 오를 확률이 높습니다. 개인이 드럼통에 석유를 사둘 수는 없으니, 원자재 가격을 추종하는 ETF나 엑슨모빌 같은 에너지 생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내 자산의 가치를 방어하는 훌륭한 수단이 됩니다.
둘째, 강력한 가격 결정력이 있는 기업을 찾습니다. 원가 부담이 늘어났을 때, 이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해도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 먹을 수밖에 없는 필수소비재 기업은 살아남습니다.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라면은 먹어야 하고, 전기는 써야 하고, 통신비는 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시기에 한국전력, KT, 농심, 코카콜라 같은 경기 방어주들을 포트폴리오의 핵심으로 배치합니다. 화려한 성장주보다는 지루하지만 망하지 않을 기업이 빛나는 시기입니다.
셋째, 현금이 최고의 종목일 수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는 시기이므로, 무리한 투자를 하기보다 잃지 않는 투자를 하는 것이 수익률 방어에 유리합니다. 고금리 예금이나 파킹통장에 돈을 넣어두고, 폭풍이 지나가고 우량주들이 헐값이 될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워런 버핏도 현금을 두둑이 쌓아두고 기회를 기다린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잃지 않는 것이 곧 버는 것입니다.
## 핵심 요약
최악의 콤비: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덮치는 경제 난치병으로, 서민들의 삶을 가장 피폐하게 만듭니다.
공급의 문제: 수요가 아닌 공급망 붕괴나 원자재 파동이 주원인이라 단기간에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고통스러운 해결: 결국 금리를 올려 경기를 희생시키면서 물가부터 잡는 것이 정석적인 해법이며, 이 과정에서 자산 가격 하락은 불가피합니다.
방어적 투자: 성장주보다는 필수소비재나 원자재 관련주, 그리고 현금 비중을 높여 일단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느끼기에 지금 우리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가요? 최근 마트에 갔을 때 가격이 너무 올라서 구매를 포기했거나, 반대로 비싸도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했던 물건이 있다면 댓글로 여러분의 장바구니 경제 상황을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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