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병목 현상: 왜 물건값이 오르고 배송은 늦어지는 걸까? 글로벌 동맥경화가 내 지갑을 털어가는 비밀

 불과 2~3년 전, 새 차를 사려고 대리점에 갔다가 딜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계약하시면 출고까지 1년 6개월 걸립니다." 인기 차종도 아니고 평범한 패밀리 세단이었는데 말이죠. 심지어 옵션으로 넣은 선루프나 스마트 키 부품이 없어서 그걸 빼면 3개월 당겨주겠다는 황당한 제안까지 받았습니다.

비단 자동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던 게임기는 웃돈을 줘도 못 구했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려니 시멘트와 목재가 없어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을 못 사는 세상, 우리는 생전 처음 겪는 공급망의 대혼란을 목격했습니다.

투자자로서 저는 이 시기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경제는 단순히 돈(수요)만 있다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건이 만들어져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길, 즉 공급망(Supply Chain)이 막히면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제는 마비되고 물가는 폭등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오늘은 전 세계 경제의 동맥경화라 불리는 공급망 병목 현상의 원인과, 이 거대한 물류의 흐름 속에서 돈을 버는 기업과 잃는 기업을 가려내는 법을 아주 상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1. 병목 현상: 고속도로가 1차선으로 줄어들 때

병목(Bottleneck)이란 말 그대로 병의 목 부분처럼 넓은 길이 갑자기 좁아지는 구간을 뜻합니다. 경제에서는 원자재 조달, 생산, 운송 중 어느 한 곳이 막혀 전체 흐름이 지체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 우리는 전형적인 병목 인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수요 폭발: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혀 있으면서 보복 심리로 가전제품, 가구, 자동차를 미친 듯이 주문했습니다. 정부가 지원금까지 뿌렸으니 돈은 넘쳐났죠. 공급 마비: 그런데 정작 공장은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문을 닫았고, 항구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컨테이너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미국 LA 항구 앞바다에 수십 척의 거대 컨테이너선들이 짐을 내리지 못해 둥둥 떠 있는 뉴스 영상을 보셨을 겁니다. 물건은 항구에 도착했는데 트럭 기사가 없어서 배송이 안 되는 상황. 이것이 바로 공급망 병목입니다. 길이 막히니 운송비는 10배가 뛰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제품 가격에 반영되어 우리가 겪은 살인적인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 2. 효율성의 배신: JIT(Just In Time)의 몰락

이 사태를 키운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 기업들이 신봉해 왔던 효율성 지상주의, 바로 JIT(Just In Time, 적시 생산) 시스템의 실패에 있습니다.

JIT는 도요타 자동차가 창시한 것으로, 재고를 창고에 쌓아두지 않고 필요할 때 딱 맞춰서 부품을 공급받는 방식입니다. 창고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 수십 년간 경영의 정석으로 통했습니다. 기업들은 재고를 죄악시하며 마른 수건 짜듯이 비용을 절감했죠.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던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독이 되었습니다. 반도체 부품 하나가 3일만 늦게 도착해도 거대한 자동차 공장 전체가 멈춰 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재고(여유분)가 없었으니까요. 제가 투자하면서 지켜본바, 이제 기업들의 트렌드는 JIT(효율성)에서 JIC(Just In Case, 만약의 사태 대비)로 바뀌고 있습니다. 비용이 좀 들더라도 창고에 재고를 넉넉히 쌓아두고, 공급망을 여러 나라로 분산시키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시대로 변한 것입니다. 이는 물류센터 리츠나 창고업 관련 주식들이 장기적으로 유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3. 채찍 효과(Bullwhip Effect): 과잉 재고의 공포

공급망 이슈를 이야기할 때 투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개념이 바로 채찍 효과입니다. 채찍을 손목으로 살짝만 튕겨도 끝부분은 엄청나게 크게 요동치는 원리입니다.

소비자가 마트에서 휴지 한 롤을 더 사면(수요의 작은 변화), 소매점은 품절이 무서워서 도매상에게 10롤을 주문합니다. 도매상은 공장에 100롤을 주문하고, 공장은 원자재 업체에 1,000롤 분량을 주문하며 공장을 증설해 버립니다. 즉, 공급망의 상류로 갈수록 수요 정보가 왜곡되고 뻥튀기되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공급망 병목이 풀리기 시작하자, 기업들은 그동안 못 구했던 한을 풀기 위해 경쟁적으로 재고를 엄청나게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식으니 소비가 뚝 끊겼습니다. 창고에는 안 팔린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죠. 최근 반도체나 가전 기업들의 실적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이유가 이 재고 사이클 때문입니다. 투자자라면 뉴스를 볼 때 "재고가 늘고 있다"는 말이 나오면, 채찍 효과의 역풍이 불고 있음을 감지하고 해당 기업 투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 4. 누가 웃고 누가 울었나: HMM의 전설

공급망 대란은 누군가에게는 재앙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해운사 HMM(구 현대상선)입니다.

배가 없어서 물건을 못 실어 나르는 상황이 오자 해상 운임(상하이 컨테이너 운임 지수, SCFI)이 수직 상승했습니다. HMM의 주가는 불과 1년 만에 10배 넘게 폭등했습니다. 당시 저는 "에이, 물류 대란이 얼마나 가겠어? 금방 풀리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이 거대한 상승 파도를 놓쳤습니다. 반면 공급망의 병목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항구 인프라 부족, 노조 파업 등)을 간파한 투자자들은 인생 역전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반대로 건설사들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아파트를 짓기로 계약은 했는데, 철근 가격과 시멘트 가격이 두 배로 뛰었기 때문입니다. 공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이처럼 같은 공급망 이슈라도 내가 투자한 기업이 배를 빌려주는 쪽인지(해운), 아니면 원자재를 사서 써야 하는 쪽인지(건설, 제조)에 따라 운명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 5. 투자자의 눈: 발틱운임지수(BDI)를 보라

그렇다면 앞으로 공급망 상황을 어떻게 모니터링해야 할까요? 전문가들만 보는 지표가 아닙니다. 우리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발틱운임지수(BDI)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입니다.

이 지수들이 오른다는 것은 물동량이 활발하고 배가 부족하다는 뜻, 즉 경기가 좋거나 공급망이 빡빡하다는 신호입니다. 반대로 이 지수들이 급락한다는 것은 경기가 침체되어 물건을 나를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매주 이 지표들을 체크하며 "지금 세계 경제의 혈관이 잘 뚫려 있나, 아니면 막히고 있나?"를 진단합니다.


## 핵심 요약

  1. 경제의 동맥경화: 공급망 병목은 수요는 폭증하는데 생산과 운송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정체 현상으로, 물가 폭등의 주범입니다.

  2. JIT의 종말: 비용 절감을 위해 재고를 없앴던 적시 생산 방식이 한계를 드러내고, 안전 재고를 확보하는 만약의 대비(JIC) 방식으로 트렌드가 바뀌었습니다.

  3. 채찍 효과의 함정: 소비자의 작은 수요 변화가 공급망 상류로 갈수록 과잉 발주로 이어져, 나중에 악성 재고가 쌓이는 부작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4. 위기와 기회: 공급망 혼란 시기에 물류/해운 기업은 운임 상승의 수혜를 입지만,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건설/제조 기업은 마진 압박을 받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최근 해외 직구를 하거나 가전제품을 살 때 배송이 너무 늦어서, 혹은 가격이 너무 올라서 당황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공급망 병목이 내 삶에 미친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공매도란 무엇인가? 개미들의 주적일까, 시장의 필요악일까? 하락장에서 돈 버는 위험한 기술

금리가 오르면 내 대출 이자만 오를까? 10년의 투자 경험으로 깨달은 돈의 중력

GDP는 우리나라의 성적표? 경제 성장률이 내 삶에 미치는 진짜 영향